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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조선칼럼) 대학생 성적까지 '세탁'해주는 우리 대학들

개혁 열풍인데 大學들 '나는 빼고', 스펙·성적 좋지만 실력 없는 학생들
졸업생 60% 평점 4.0인 학교도 있고 '취업용' 성적증명서 따로 발급하기도
양심도 없고 경쟁력도 없는 대학 '졸업시험제 도입' 주장 나올지도…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사회 각층에서 개혁 작업이 한창이다. 저마다 문제점을 파헤치면서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격하게 오가고 있다. 이 같은 개혁 열풍에 오불관언 '나는 빼고'를 주장하는 그룹 중 하나가 바로 대학이다. 대학의 개혁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부존자원 한 줌 없는 우리나라에서 금강석과 같은 최대의 인적 자원이 바로 우리 젊은이들이다. 이들이 국제무대에 나가서 어떻게 경쟁하고 이길 수 있게 교육해야 하는지가 최대의 과제라는 데는 모두가 공감하지만 그저 말만 무성하다.

학령 인구가 매년 줄어들고 있어 대학 입학 정원보다 고등학교 졸업 정원이 적어지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방의 일부 단기대학에서는 몇 년 전부터 이미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으며, 또 어떤 대학에서는 대학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조차 부끄럽게 대학 교수가 지역의 고등학교를 찾아 다니면서 입학 지원을 호소하고 있는 것도 우리 현실이다.

학생들은 학생들 나름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졸업생들이 원하는 꿈의 직장이라는 곳에서는 1년에 겨우 5만명 정도의 신입사원만을 받는다. 전문대를 포함하여 연평균 대략 50만명가량이 대학을 졸업하니 이들의 취업전쟁은 산술적으로 10대1의 경쟁률을 기본으로 안고 있다. 현실이 이러니 원하는 꿈의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서 1학년부터 스펙이라는 것을 쌓기 위한 갖가지 시험, 특별활동에 몰두하게 된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전 세계적으로 시행되는 토플, 토익 등의 영어시험에는 상당히 좋은 성적을 내면서도 길거리에서 외국인만 보면 입이 얼어붙는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교포 고교생이 우리나라에 와서 미국 대학 입학자격 시험 SAT 과외를 받으면 성적이 향상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처럼 영어가 안 통하는 사회도 흔치 않다. 스펙을 쌓고 성적을 올려도 그들이 원하는 꿈의 직장 또는 대학원 진학도 시원치 않다. 그 원인은 바로 대학 내의 문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고 우리 사회 최후의 양심의 보루이며,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가야 할 길을 깨우쳐주는 교육기관 이상의 집단으로 인식되어 왔고, 상당 부분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은 대학을 졸업해도 갈 길을 못 찾아 고난의 길로 들어서는 청년 백수들이 태반이고 그렇다 보니 대학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편법도 생겨난다.

학문의 전당, 진리의 상아탑이라던 대학에서 무더기 A학점을 주고 가짜 성적증명서를 발급하고 있다는 말이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최근 기사에 따르면 서울의 어느 공립대학 학부에서는 70%의 학생들에게 A학점을 주었다고 하며, 어느 대학 졸업생 중 60%가 졸업평점 4.0 이상이라고도 한다. 실제로 이름만 대면 모두 알 만한 대학에서 이처럼 코미디 같은 학점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성적을 세탁해 주고 있는 것이 우리 대학의 불편한 진실 중의 하나이다. 학생이 시험을 보고 D를 받았으면 영원히 D로 기록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일부 대학에서는 자신에게 불리한 학점을 버릴 수 있게 해준 다음, 성적증명서를 발급 신청할 때 취업용인지 열람용인지를 묻는다. 취업용이라면 성적을 세탁해서 성형한 성적증명서를 떼어주고, 열람용이라면 그가 실제로 받은 학점을 알려준다. 이런 웃지 못할 일들이 대한민국 대학사회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으며,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다.

일부 기업에서는 아예 성적 증명서를 받지 않고 자사가 개발한 방법으로 학생의 우열을 가리기도 하고, 자체적인 대학 성적 환산표를 가지고 어느 대학의 3.5는 어느 대학의 4.0과 동일하게 평가하는 등의 방법까지 동원하고 있다고 한다. 이래서야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고 시대의 양심이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이렇게 세탁하고 성형한 성적표, 무더기로 A학점을 주는 관행, 이런 상황에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에게 국제 경쟁력을 기대할 수 없다.

세상은 이미 충분히 국제화가 되어 있고, 모든 분야가 국제 경쟁 중이다. 우리 졸업생이 취업을 하면 국내 대학에서나 통하는 대학 서열 속의 상대가 아니라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외국의 명문대생들이 그의 경쟁자가 되고, 취업하는 순간부터 경쟁은 시작된다. 언제까지 국내 대학생들이 자신의 경쟁자라는 우물 안 개구리 식 사고로 국제 경쟁에서 이길 인재를 길러 낸단 말인가?

이렇게 대학들이 사회가 믿지 못할 행태를 계속하다가는 요즈음 미국에서 한창 논의되고 있다는 졸업시험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대학들도 환골탈태해야 한다.

  2013년 8월 29일 조선일보 사외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