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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미국 유학" 미국은 "한국 배워라".. 서로 교육제도 부럽다는 한국과 미국

국민일보 | 입력 2013.08.22 03:55



[쿠키 사회] 지난해 한국 초·중·고교생 1만578명이 미국 유학을 떠났다. 조기유학 열풍은 2006년 정점을 찍고 줄어드는 추세지만 여전히 해마다 1만명이 넘는 어린 학생들이 한국 교실에서 벗어나는 탈출구로 미국행을 택하고 있다.

그런데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틈만 나면 "한국 교육을 배우자"고 외친다. 지난 6월에도 노스캐롤라이나주 무어스빌 중학교를 방문해 "고속 인터넷을 사용하는 미국 학생은 20%에 불과한데 한국은 100%"라며 다시 '한국처럼'을 강조했다.

이렇게 한국인과 미국인은 자기네 교육환경을 비판하며 서로 상대방을 부러워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 '기이한' 현상에 의문을 품은 미국 고교의 한국인 유학생 2명이 양국 학생과 학부모들을 설문조사하고 자신들이 경험한 양국 교육을 분석해 논문을 썼다. 제목은 '왜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나(Why Does the Grass Look Greener on the Other Side of the Fence): 교육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신념체계 비교'.

이 논문은 이달 초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주최한 국제청소년학술대회(ICY)에 제출돼 관심을 끌었다. 미국 보스턴의 고등학교 필립스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김브라이언(18)군과 김은재(16)양은 교육에 대한 한국인과 미국인의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 '원하는 전공의 비명문대와 원하지 않는 전공의 명문대 합격통지서를 동시에 받았을 때 어느 쪽을 택하겠나' 같은 8개 질문을 던졌다.

전공을 떠나 명문대에 진학하겠다는 성향은 미국인이 더 강했다. 미국인 응답자들은 평균 4.35점('매우 그렇지 않다' 1점, '매우 그렇다' 7점), 한국인은 3.86점이다. '자녀의 명문대 진학이 부모의 성공과 관련돼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선 한국인이 4.05점으로 '그렇다'는 답변이 많은 반면 미국인은 2.31점에 그쳤다.

이런 차이를 분석해 두 학생이 내린 결론은 "한국인과 미국인은 교육에 대해 서로 다른 신념체계를 갖고 있으며, 상대국 교육환경을 평가할 때 그런 차이에서 발생하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좋은 점만 부각시켜 본다"는 것이었다. 김군은 21일 "미국인은 한국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교육을 받는지 모르고, 한국인은 미국 학생들이 대학입시에 반영되는 봉사활동, 동아리 활동, 스포츠 활동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모른다"고 했다.

고교생들의 연구여서 여러 한계를 갖고 있지만, 국내 교육 전문가들은 양국 교육의 현실을 '더 커 보이는 남의 떡'에 비유한 건 아주 적절하다고 평가했다.

◇오바마는 왜 한국 교육을 부러워하나=미국은 한국 교육의 효율성에 주목한다. 지난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교육장관 회의를 위해 방한한 앤서니 밀러 미 연방 교육부 차관은 "한국 정부·학교·학부모의 교육열이 국제학업성취도와 고등교육진학률로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서울대 교육학과 한숭희 교수는 "미국은 전반적인 저학력과 지역별 교육격차가 심각한 상황이라 높은 대학진학률이 유지되는 한국의 교육열에 주목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한국은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학부모들의 교육열에 저절로 경쟁체제가 만들어진다"며 "교육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사회 분위기 역시 미국 입장에선 부러움의 대상"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한국 학생들이 각종 국제경시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것도 미국이 한국 교육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교육열이 '한강의 기적'을 가져온 힘으로 꼽히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왔다. 한국교원대 김명수 교수는 "오랜 경기 침체에 빠져 있는 미국이 돌파구로 교육에 주목하면서 한강의 기적을 일군 한국 교육에 관심을 갖는 것"이라며 "대학진학률 등 '투입 대비 성과'로 볼 때 한국 교육의 '성과'가 대단한 수준인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국 부모는 왜 자녀를 미국에 보내나=한국 학생들이 미국 조기유학을 택하는 건 국내의 사교육 과잉 현실과 획일적 교육에 대한 회의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김 교수는 "한국 학부모들은 국내 대학교육이 미국보다 뒤떨어졌다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런 측면이 있다"며 "미국 대학에 진학하려면 한국의 주입식 교육보다 미국 중·고교에서 공부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 조기유학을 결심하곤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학생 한 명 한 명의 장·단점을 분석해 가르친다는 점, 학력보다 실력을 우선시해 재능을 키워주는 교육이 가능하다는 점이 미국 교육의 장점"이라고 분석했다.

한 교수도 "예전엔 한국 교실에서 순위경쟁에 밀려 미국 조기유학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실용적인 이유로 미국에 간다"며 "미국 교육의 질이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인과 미국인, 왜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나=이 같은 분석을 종합하면 한국인은 미국 교육의 '질'을, 미국인은 한국 교육의 '양'을 부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미국이 한국 교육을 '롤모델'로 삼는 데 대해 "사교육 시장을 간과한 평가"라고 지적했다.

전국교원연합회 하병수 대변인은 "한국 교육의 성과는 경쟁을 요구하고 대학 진학을 최우선시하는 분위기에서 미국보다 월등히 많은 사교육이 작용한 결과"라며 "대학진학률 등 외형적 모습만 갖고 한국 교육을 평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오바마 대통령의 언급을 봐도 한국의 교육 콘텐츠에 대한 칭찬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또 한 교수는 "미국에 비해 사립대 비율이 높고 서울 소재 20여개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면 취업에서 이득을 보기 어려운 한국의 결정적 흠을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라고 했다.

논문 쓴 재미 유학생 남매 "美 교육을 마냥 이상적으로 봐선 안돼"

한·미 교육 현실을 '더 커 보이는 남의 떡'에 비유한 재미 유학생 김브라이언(18·사진 왼쪽)군과 김은재(16)양은 남매다. 어릴 때 미국으로 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나온 학교에서 초등·중학교 과정을 마쳤고 현재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부자가 졸업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교육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할 때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떠올랐다고 한다. 고등학생이 된 뒤로는 방학 때 한국에 가도 공부하느라 얼굴조차 보기 힘든 친구들의 현실을 오바마가 알고 하는 얘기일까 궁금했다는 것이다.

'기러기 아빠'까지 등장하며 가능하면 자녀를 미국에 보내 공부시키려는 한국과 그런 한국의 교육을 배우자는 오바마 대통령의 미국에서 남매는 모두 '교육'을 경험했다. 남매는 2004년(각각 초4, 초2)에 할아버지가 있던 하와이로 조기유학을 떠난 뒤 10년째 미국식 교육을 받고 있다.

김군은 "한국 교육은 결과물이 좋은 편이라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지만 결과가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한국 교육의 내면을 보면 문제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듯이 미국 교육도 마냥 이상적으로 봐선 안 된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학생들도 명문대 스트레스가 상당히 심하다고 전했다. 이른바 '아이비리그' 대학에 진학하려고 봉사활동 등 다양한 '스펙'을 준비하느라 입시 스트레스를 받으며 그 정도가 매우 심한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김군은 "이번 연구를 진행하면서 교육의 효율성과 결과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며 "한국과 미국뿐 아니라 하와이 등 미국 각 지역의 교육환경, 일반고와 특목고 등 한국 고교 유형별 교육환경의 효율성과 성과에도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오해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유나 박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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