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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도전은 아름답다] 레미콘 공장 다닌 'IMF 키드'… 그의 논문이 네이처誌 표지에

 

[인간의 도전은 아름답다] 레미콘 공장 다닌 'IMF 키드'…
그의 논문이 네이처誌 표지에

 

 

외환 위기로 집안이 망해 대학 진학 대신 레미콘 공장에 취업해야 했던 'IMF 키드'가 세계 최고 과학 저널의 표지 논문을 써냈다.

주인공은
이화여대 초기우주과학기술연구소 남구현(33·사진) 특임교수. 그는 세계 최고의 과학저널인 영국 네이처지(誌) 10일자에 '균열 제어를 통한 형상 구현(Patterning by controlled cracking)'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반도체 재료인 실리콘 웨이퍼 표면에 인위적으로 균열(crack)을 일으켜 현재 기술로는 구현하기 힘든 나노m 크기의 구조들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내용이다.

산업현장의 골칫거리인 균열을 신기술로 탈바꿈시킨 '역발상'의 결과물이다. 남 교수가 제1저자를 맡고
KAIST 고승환 교수(기계공학), 이화여대 박일흥 교수(물리학)가 참여한 논문에 대해 네이처는 "균열을 완벽히 제어한 최초의 연구"라고 평가하며 표지 논문으로 선택했다.

남 교수의 이번 논문은 박사가 된 뒤 첫 논문이다. 전세계 과학자들이 평생 논문 한 편을 싣기 힘든 네이처에, 그것도 표지 논문의 영예를 단번에 얻은 것이다.

남 교수는 26세 때인 지난 2005년 미국에 유학, 5년 만에 기계공학박사를 땄다. 그 이력 뒤에는 고교 3학년이던 1997년 건설업을 하던 아버지의 부도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인천 남동공단의 레미콘 공장에서 용접과 산소 절단을 해야 했던 아픈 사연이 있다.

"남들이 뭐라 해도 아버지는 영원한 저의 영웅입니다."

교수 임용 후 첫 논문으로 세계적인 과학저널인
영국 네이처지(誌) 표지를 장식한 남구현(33) 교수는 아들에게 제대로 뒷바라지를 못해줘 미안해했던 부친 남기홍(61)씨에게 영광을 돌렸다.

남 교수는 2010년 미국 UC버클리에서 광(光)센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당시 박사논문 서문에서도 아버지를 '영웅'이라고 표현했다. 유학 비용을 한 푼도 대주지 못하고 바다 건너에서 마음만 졸였던 아버지에게 멀리서나마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자랑이었다. 대구 능인고 재학시절 전교 수석을 다투던 수재였고 물리학을 좋아해 서울대 물리학과 진학을 꿈꿨다. 그러나 고교 3학년이던 1997년 IMF 외환위기 때문에 아버지가 운영하던 레미콘 업체가 부도를 맞았다. 채권자들은 대입 모의고사 날 남 교수가 다니던 고교에 몰려와 확성기를 틀어놓고 '내 돈 돌려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그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고향을 떠나 인천으로 갔다. 산업기술요원으로 남동공단 레미콘 업체에서 2년간 용접 일을 했다. 항공전문 월간지 기자로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학업에 대한 갈증은 풀 길이 없었다.

"
서울대 물리학과에 진학한 친구한테 부탁해 미적분학과 물리학 교재 등을 얻어 독학을 시작했죠. 아버지는 저에게 늘 '아무 힘이 못 돼서 미안하다'고 하셨지만 저는 원망하지 않았어요."

 

 

남 교수는 산업체에 근무하면서 알게 된 항공대 황명신 교수(작고)가 "너는 머리도 좋고 의지도 있으니 미국에서 공부해 보라"고 적극 권유해 유학을 떠났다. 그는 지역 커뮤니티칼리지(일종의 전문대)를 거쳐 2005년 UC버클리 기계공학과 3학년에 편입했다.

고생하는 가족들 생각에 그는 대리운전으로 학비를 벌어가며 공부했다. 낡은 중고차를 빌려 한국 음식점에 오는 손님들을 실어날랐다. 매일 밤 서너 번을 뛰면 하루에 수백달러를 벌 수 있었다. 그는 "지금도 대리운전을 해도 될 정도로 운전에는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대학원에서 초소형 정밀기계 분야를 전공한 그는 새벽에 집에 돌아오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연구에 매달렸다. 그때 읽은 논문만 1000편이 넘는다.

박사논문을 준비하던 2007년 말 남 교수는 반도체 재료인 실리콘 웨이퍼(반도체의 재료인 둥근 원판)에서 일정한 형태로 퍼져나간 균열(crack)을 발견했다. 그는 '규칙적인 균열을 만들어내는 원리를 알 수는 없을까'라고 생각했다. 균열의 발생과 전파는 매우 불규칙하고 무질서해서 이를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과학계 통념에 정면으로 도전해 보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그는 지도교수한테도 그 아이디어를 털어놓지 않았다. 남 교수는 "한국에서 우리 힘만으로 연구해 성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박사학위를 따자마자 한국으로 돌아왔다.

남 교수는 고승환
카이스트 교수, 박일흥 이화여대 교수 등과 공동연구를 진행했다. 2년간의 연구 끝에 쐐기나 계단 모양의 흠집, 유리와 같은 깨지기 쉬운 물질을 이용해 실리콘 웨이퍼에 직선과 곡선을 포함한 다양한 패턴의 균열을 만드는 방법을 찾아냈다. 논문의 공동저자인 고승환 교수는 "이 기술을 응용하면 극소량의 샘플로 정확한 진단이 가능한 초소형 바이오칩을 만들 수 있고 회로 선폭(線幅)이 10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 단위인 초정밀 반도체 회로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네이처는 "남 교수팀의 방법은 균열 연구와 나노공학을 연결하는 새로운 다리를 놓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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